제가 학습 관리를 맡았던 열네 살 진영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수업 진행이 조금 느렸습니다. 단어 스무 개 외우는 데 10분을 주면 꼭 4~5분은 더 필요로 했고, 30분짜리 강의인데 40~50분이 넘게 걸리기도 했습니다. 이름이 반짝이는 건 또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한번은 수업을 제대로 듣고 있는 건지 의심이 돼 '필기를 하며 들어보자'고 했더니 50분이 넘게 돌아오지 않는 겁니다. 한 시간쯤 지나 '강의 제대로 듣고 있는 건 맞느냐'고 묻자, '네'라는 건조한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기다릴 수밖에요. 수분 뒤 돌아온 진영이는 돌아왔다는 말 대신 세 페이지짜리 필기를 찍어 보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자를 보고 있자니, 강의를 잠시 멈춰 놓고 열심히 받아 적는 모습이 눈에 선해 미안해질 따름이었습니다.

그 일 이후로는 진영이를 조금 기다려 주기로 했습니다. 9월 수업을 토대로 학부모님께 보내는 월간 리포트에는 이 비스무리한 내용을 썼습니다. "진영이는 더디지만 끝까지 해내려는 의지가 있는 학생입니다." 버거워도 포기하지 않는 진영이가 쉽게 질려 하고 그만두는 어른들보다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요.

어른들은 자연스레 어린이나 청소년을 어른으로 향하는 '과정'이나 '단계'로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어린이였던 적이 있다는 걸 쉽게 잊은 채로요. 그럴 때마다 이 말을 기억해 보려고 합니다.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